어느 무더운 여름날, 정성일은 임권택 감독을 찾아 뵙고
영화 현장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허락을 받았지만, 기다리던 영화를 감독은 여러 가지 이유로 덮는다.
임권택 감독은 그저 조용히 다음 영화를 다시 기다릴 뿐이다.
1962년에 첫 번째 영화를 찍고, 그런 다음 101편의 영화를 만든
이 한국 영화의 대가에게도 다음 영화를 찍는 것은 매번 힘겨운 일.
임권택 감독은 세상 속에서 중력을 유지하면서 한 그루 나무처럼 거기 머문다.
바람은 쉬지 않고 나무를 흔든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뀐다. 그런데도 뜨거운 녹차 한 잔을 마시듯이 기다린다.
그런 다음 어느 겨울 1월 1일, 102번째 영화 촬영을 시작한다.
그저 녹차를 마시는 것만 같은 그 기다림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그 곁에 머물며 그 마음을 느껴본다.
정성일은 임권택 영화를 두 편으로 나누어놓았다. 이 구분은 단지 (긴 상영 시간 때문에 내린) 편의적인 결정이 아니다. 1부인 <녹차의 중력>과 2부 <백두 번째 구름>의 이야기는 시간의 순서를 따라 이어지고 있지만,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접근법 때문에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1부가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횡축의 영화라면, 2부는 그 시간의 흐름 중 한순간을 멈추어 세운 채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종축의 영화다. <녹차의 중력>은 (태어나서 102번째 영화 <화장> 촬영에 들어가기까지의 긴 시간을 담은) 임권택의 일대기다. 영화는, 임권택의 (정식) 인터뷰 숏을 단 한 번도 찍지 않고서, 과거의 어떤 이미지도 사용하지 않고서, 어떤 영화적 삶의 초상을 때론 유려하고 의고적이며 때론 날카롭고 현재적이기도 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그 필치에는 한 대상에 대해 30년 가까이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준비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여유와 깊이가 함께하고 있다.
(2018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변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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